나의 첫 사랑

못다쓴... 내 첫 사랑 이야기(2)...

해변길손 2012. 6. 7. 19:20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보니 그 다음에는 숙식이 문제였다. 그 시절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취보다는 하숙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진학한 서울의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 내가 졸업한 고향 중학교 졸업반 담임선생님의 옛 스승님이셨다.

그렇지 않아도 체구가 자그마한 나를, 아무도 아는 사람이나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서울로 보내려니 잠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는... 이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 고향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을 졸라서...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의 그 교감선생님 댁에 어렵게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교감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집은 학교 관사였다.

 

얼떨결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을 맞아 고속도로가 없던 그 시절, 아니, 아스팔트라는 포장된 도로라고는 서울에서 처음 본 그 시절...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장장 16시간이나 걸려서 고향으로 갈수 있었다. 약속된 시간은 12시간 이었지만, 미군에서 폐품으로 버린 트럭에다 드럼통을 펴서 만든 그 시절의 버스는... 자주 고장이 나고, 펑크가 나서... 한 번도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방학이 아니면 고향엔 갈 생각도 못 해 봤다. 그래서 그렇게도 기다리던 첫 방학을 맞아... 나는 그토록 그립던 고향의 어머니 품에 안겼다.

 

꿈결 같은 어머니 품에서의 여름방학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다시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고향집을 뒤로한 채, 서울의 고등학교 교감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해 보니 우리 교감선생님께서 다른 여자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전근발령이 나셔서, 부득이 현재의 이 학교관사를 비우시고 이사를 가셔야 하신다면서... 나 보고는 하숙집을 따로 구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하숙집이 좋은지, 또 어디 가서 하숙방을 구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며칠이 지난 뒤... 교감선생님께서 안방으로 나를 부르시더니 내가 소개해 주는 집으로 가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교감선생님 댁 식구들과 몇 개월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정이 들어가는데... 또 낯 설은 다른 집으로 이사 간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실 새 하숙집 주인이 우리 고등학교 대 선배님이시고 많이 엄 하시다고 하셨다. 그래서 동네 불량배들이... 그 집에 하숙하는 학생들을 함부로 괴롭히지 못하니까... 그 하숙집이 좋을 것 이라고 하셨다.

 

1959911... 달빛도 없는 어두컴컴한 늦은 저녁, 책가방이랑 이불 보따리를 잔뜩 둘러메고 교감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새 하숙집 대문을 들어섰다. 교감선생님께서 미리 말씀을 잘해 주셨는지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헌데, 희미한 전등불이 비춰주는 주인집 안채 거실마루에는... 주인집 딸들이 새로 이사 오는 하숙생인 나를 보기 위해 마루에 나와서 모두들 서 있었다. 몇 명인지는 몰라도 꽤 여러 명이구나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딸만 여섯 명인 이집의 넷째 딸인 것을 나는 한참 후에 알았다.

 

나는 그 희미한 전등 불빛 속에서도 그 소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우며, 환하게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 나이 또래였기에 그 소녀의 모습이 특별히 내 눈에 또렷하게 들어 왔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가슴이 뛰고 호흡이 빨라졌다.

세상에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연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 그 소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 보지 못했다.

 

이렇게 하여 그 집 대문 옆 문간방에서의 내 하숙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그 집에는 다른 하숙생들도 있었지만 다들 한방에 두 명씩 있었으나 나는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것 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혼자 하숙하는 소위 독방하숙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하숙비가 더 비싼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부자이신 우리 아버지는 하숙비와 잡비, 교납금등을 날짜 어기시지 않고 꼬박꼬박 늘... 제 날짜에 우체국을 통해 현금으로 보내 주시어서 돈 때문에 불편을 겪어 본적은 거의 없었다.

 

새로 이사 온 다음날부터 나는 다른 하숙생들과는 달리... 이 하숙집 생활에서 몹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하숙집에서 내가 제일 곤란하고 불편했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는 일이었다. 세수를 하려면 마당엘 나가 우물물을 퍼서 세수를 해야 하는데... 주인집 딸들이 먼저 나와 있으면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는 등교할 시간은 다가오는데도 마당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안절부절만 했다. 마당에는 주인집 딸들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으니 마당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수도 않고 그냥 학교로 갈수도 없고 해서 매일 매일 아침마다 쩔쩔 매기가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아주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새벽에 일어나면 어둡고 몹시 추웠지만 그래도 그게 훨씬 마음 편했다. 물론 학교엘 다녀오면 난 내방에서 한 발자국도 마당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고, 대문 옆 반대편쪽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만 어쩌다 한 번씩 다녀올 뿐 이었다.

더구나, 마당 빨랫줄에 널려있는 주인집 딸들의 브래지어가... 공군 파일럿이 쓰는 모자인줄 알았고, 그런 나를... 12명이나 되는 하숙집 친구들이 촌놈이라고 놀려대면서 집안에 소문을 내는 바람에... 나는 더구나 주눅이 들어 딸들이 얼씬거리는 마당엔 나가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나는 또다시 16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 고향으로 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내 그리운 어머니와 동생들의 곁으로 갔고, 비록 아버지는 무서웠어도 언제나 인자하신 어머니가 곁에 있기에 추운겨울도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며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남은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의 새봄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