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카시아꽃 향기를 좋아 하시나요?...”
2007. 5.
- o.k. Park -
‘똑, 똑, 똑’...
언제나 그러하듯이 저녁밥을 먹고 난 직후, 내게 숭늉 물을 갖다 주면서 빈 밥상을 가지러 오는... 하숙집 식모 선순이의 방문 노크소리에 나는 무심코 밀창으로 되어있는 내 방문을 스르르 열었다.
어스름 달빛이 곱게 비추던 내 방문 앞에는... 으레 있어야할 하숙집 식모 선순이는 보이지 않고, 대신 그 곳에는 하숙 주인집 넷째 딸이 서 있었다.
앞치마까지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쟁반에 곱게 받쳐진 숭늉그릇을 나에게 내 밀며,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오빠는... 향수를 싫어하세요?”....
순간 나는 바보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뭐가 어찌 되었는지 지금도 나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나는... 홍당무가 된 채로 수줍어서 대답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숭늉그릇을 받아든 뒤... 빈 밥상을 내어 주고는 우물쭈물하면서 슬며시 내 방문을 닫고 말았을 거다.
그렇게... 열여덟 살, 내 어린 시절의 첫사랑은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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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봄, 내 나이 열일곱 살...
어린나이에 부모님과 동생들을 그리운 고향에 두고, 나는 서울로 고등학교 유학(?)을 떠나왔다.
내 생각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져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라는 당시의 시류에 따라... 나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엄명을 받고,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는 서울로 진학하게 되었던 거다.
우리 고향에서는 제법 부자였던 우리집은... 사업을 하시는 아주 엄하신 아버지와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고 마음씨 고운 어머니, 그리고 내 밑으로 남동생,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또 남동생, 이렇게 부모님과 4남1녀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집안이었다.
1950년대 6.25전쟁이 끝난 뒤, 아름답고 웅장한 대관령과 그림같이 맑고 고운 경포호수, 그리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바다가 있는 내 고향, 강릉에서...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관료나 부잣집 어른들 대부분이, 첩 하나정도 두는 것을 자랑으로, 또는 능력으로 과시하던 시절이라서... 우리 아버지도 한, 두 곳에 새 살림을 차려놓고 출입 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가끔, 아니 자주... 외박하시고 새벽에 집으로 들어오실 때면, 식구들 보기가 민망해서인지... 언제나 겸연쩍게 큰소리로 선수(?)를 치시곤 하셨다.
집 마당에 들어 서시면서부터 ‘세숫대야가 제 자리에 있지 않다’느니... ‘장독대 뚜껑이 제대로 닫혀있지 않다’느니... 하시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걸 트집 잡으시면서 불같이 화부터 내셔서 집안 식구들이 아예 아무소리도 못하게 만들곤 하셨다.
착 하디 착 하신 우리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직 어리기만 한 우리들 형제는 그저, 아버지의 눈치만 볼 뿐, 모두들 무서워서 제방 구석으로 숨기만 했다.
그리고 꽤나 자주 벌어지는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손찌검이 휘날릴 때면,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나이에... 나는 벌써 ‘인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사람은 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유소년때는 활달하던 아이에서... 아주 생각이 깊고 말이 없는 고독한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변해가는 나를 서울로 보내시는 어머니는...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리시고 걱정이 되셨을 거다.
그중에서도 특히, 당시에는 서울로 유학간 부잣집 학생들 중 몇몇 학생들은... 곁에 집안 어른들이 계시지 않고, 아무도 나이 어린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해 주지 않으므로 해서 생기는... 방탕한 생활과 빗나간 모습들이 주위에서 이야기 되곤 하던 때라... 어머니는 내게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부탁하시면서... 꼭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첫째가 ‘술과 담배는 대학생이 되기까지는 배우지 마라.’
둘째는 ‘서양 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배우지 마라.’ 이렇게 말이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먹고 사는 것에 부족함이 없었던 우리 집은... 우리 집이 부자임을 식구들에게 유난히 과시하던 우리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부터 사랑보다는 폭력을 자주 받으시던 어머니, 그러기에 그런 어머니에게...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어머니와의 이런 약속들을 지켜, 어머니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다닐 때 까지도 당시에 유행하던 춤은 물론이고... 술,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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